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국 급식 (문단 편집) == 악화 == >'''Despite food rationing (which lasted until 1954) children in 1950 had healthier diets than their counterparts in the 1990s,''' according to a study by the Medical Research Council (James Meikle The Guardian 30 November 1999). Post-war four year olds had higher calcium and iron intakes through greater consumption of bread and milk, greens and potatoes. They ate and drank less sugar than children today. >의학연구위원회(발표자 제임스 메이클, 발표지 [[더 가디언]] 1999년 11월 30일자 기사)의 조사에 따르면, (1954년까지 지속되었던) '''배급제로 인한 부실한 식료 공급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 아이들은 1990년대 아이들보다 훨씬 더 건강했다.''' [[제2차 세계 대전]] 이후 기준으로 4살이 되는 아이들은 충분한 양의 [[빵]]과 [[우유]], [[채소]]와 [[감자]]를 공급받아 충분한 양의 칼슘과 철분을 섭취하였으며, 오늘날의 아이들보다 더 적은 양의 [[설탕]]을 섭취하였다. >- [[http://www.educationengland.org.uk/articles/22food.html|Food for Thought: child nutrition, the school dinner and the food industry]](영어) 사실 [[1970년대]] 이전에도 맛은 보장할 수 없었던 급식이지만 영양은 보장되었다. 그러나 1970년대에 [[오일 쇼크|심각한 경제 공황]]이 [[영국]]에 들어닥치자 당시에 [[영국 총리]]로 재임하였던 [[마거릿 대처]]가 재정 삭감을 위해 학생들의 급식 배급에 관여하던 [[영양사]]들의 수를 줄였고, 그 외의 급식 문제는 더 이상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에 넘겨버리면서 '''재앙'''이 시작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다. 대처는 총리가 되기 이전 교육부 장관이었던 1970년대에 [[우유]] 무상급식도 폐지해서, '''우유 도둑(milk snatcher)'''이라며 대차게 까인 경력이 있는 인물이다. 상기한대로 무상 우유급식 문제는 그 [[제2차 세계 대전]]의 영웅 중 하나인 [[윈스턴 처칠]]이 추진한 정책 중 하나였으니만큼 간 크게 그것을 건드렸으니, 대처가 이 때 얼마나 심하게 데였는지, 자신의 정책들에 대해 쏟아지던 온갖 비난들에도 절대 굴하지 않은 이 '철의 여인'이 생전에 후회한 몇 안 되는 일들 중 하나이다. 오죽하면 [[영국 보수당]] 금기어 양대산맥이 "인두세"와 "우유 도둑"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. 인두세에 관해서는 [[마거릿 대처]] 문서로. 급식은 단순히 애들 배 채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, 이 애들이 커서 나라의 일원이 될 것이므로, 장기적으로는 전체 국민의 건강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수단이다. 그러므로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. 그런데도 대처 시대 이후로도 급식 예산은 계속 적게 나왔고, [[영양사]]들도 사라지고, 법적 기준도 따로 안 정해져 있다 보니 [[프렌치 프라이]], [[피시 앤드 칩스]], [[치킨너겟]] 등의 튀김류만 나왔다. 그 때문에 학생들은 [[비만]]에 시달렸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